대학병원의 전공의들의 지위는 애매하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 의료미래에 없어서는 안될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총선을 앞둔 2024년 초 어느날, 대한민국 의료계가 발칵 뒤집혔다. 의대입학정원을 2천명 증원하는 정부의 안이 발표되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의대증원 문제는 여러 정부에서 고민해왔고 또 실제로 증원하거나 증원을 추진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때에도 심각한 갈등을 겪었지만 합의를 거쳐 적정선을 유지하였다. 의대정원 문제는 의료정책의 장기적 안목에서 과학적, 합리적 추진이 필요하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대뜸 2천명을 증원한다고 발표하였고, 그 규모는 현 정원의 60%가 증가하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그 후 2024년 2월 중순 이후 전국 대학병원의 전공의들은 비상식적인 의대증원에 반발하여 사직서를 제출하였고, 의료환경은 급격히 불안해졌다. 정부는 전공의가 사라진 병원의 의료현실을 국민건강권의 위기로 몰아가면서 의료대란은 곧 국가적 재난상황이라고 선전하며 재난시 입는 민방위복을 입고는 국민과 환자들의 피해상황을 생중계로 전달하며 불안감을 조성했다. 정부와 의사단체는 극단적으로 대립했고 그 피해는 사직한 전공의와 국민들의 몫이었다. 극단적으로 치달아 해결될 기미가 없던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은 의외의 방법으로 소멸되었다. 비이성적인 행정집행을 하던 정부와 대통령실이 윤석열의 계엄선포로 순식간에 무너져내렸기 때문이다. 25학년도 의대입학정원이 1600여명 증원된 결과만 남기고 2천명 증원이라는 미스테리한 숫자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리고 전공의들은 다시 병원에 입사지원서를 내고 재취업을 선택하였다.
그럼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하였는가? 그 핵심은 의대정원 증원에 있다기 보다는 불합리한 근거로 2천명이라는 공포스러운 증원을 추진한 윤석열의 무리수에 있었다. 윤석열 정부의 복지부나 의사증원을 요구하는 국민들이 근거로 드는 것은 OECD의 통계다. 다른 선진국에 비해 국민과 의사의 비율이 매우 낮다는 주장을 되풀이 했다. 그러나 각 나라마다 의료시스템이나 인구증감속도, 병원이용 횟수 등이 차이가 있으므로 이를 국민 만명당 의사수라는 고정된 통계로 설명할 수는 없다. 실재 우리나라 출생률은 세계 최하위이며 인구수는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어 향후 현재의 의사수 통계는 무의미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는 병원에 가서 진료받거나 수술을 예약할 때 오래 기다린다는 점을 강조하거나, 응급실 뺑뺑이 현상을 보면서 의사가 부족하다는 체감을 하는 듯하다. 그리고 의사들의 수입이 지나치게 높다는 상대적 박탈감에 의사수를 늘려서 그들의 수입을 줄여야한다는 비자본주의적 감정적 주장을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실재로 우리는 병원을 이용하거나 의사를 만날 때 어려움을 겪는가? 아니다. 일본이나 유럽, 미국에 비해 우리는 너무나 편하게 병원을 찾고 언제고 전문의를 만날 수 있다. 널린게 병원이다. 그런데도 시골에 의사나 병원이 없다거나 수술대기가 길다는 것에는 또 누구나 동의한다.
우리나라 의료정책은 국가가 국민들에게 의료보험료를 받아서 이를 의사들의 진료행위별로 그 댓가를 지불하는 방식이다. 병원에 갈 경우 대부분의 의료비는 건강보험공단에서 지불하고 나머지 본인부담금을 20%정도 환자가 지불한다. 의사들은 의료행위별로 국가가 정해놓은 비용을 받을 수밖에 없다.(비급여는 논외로 한다) 매달 내는 보험료를 불문한다면 다른 선진국에 비해 우리나라가 정말 싼 비용으로 병원치료를 받는 것은 사실이다. 여기에서 의사수 부족이라는 엉뚱한 문제가 발생한다. 그 원인은 먼저 저저수 정책이다. 수가란 의사의 진료행위별로 정해진 보상가이다. 그 수가가 너무 낮게 책정되어 있어 의사들이 어느 정도 수익을 얻기 위해서는 많은 환자를 짧은 시간에 진료해야한다. 1시간 대기 1분 진료의 원인이다. 두번째는 저렴한 읨료비다. 병원가는 것에 부담을 느끼지 않으니 자주간다. 그러니 병원이 복잡하다. 세번째는 대형병원 선호도이다. 감기로 대학병원가는 경우다. 대학병원이 복잡해지고 꼭 필요한 대학병원만의 진료가 미루어지며 대기하게 되니 의사가 부족하다고 느낀다. 네번째는 시골에는 병원도 의사도 찾기 힘들다. 그러므로 의사가 부족하다고 오해하곤 한다.
그럼 이러한 이유로 의사수를 늘려야할까? 그렇지 않다. 낮은 수가는 반드시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의료재정에 문제가 생긴다. 결국 본인 부담금을 올리거나 정부재정이 투입될 필요가 있다. 이는 두번째 문제와 연계되어 다루어져야 한다. 본인 부담금이 올라가면 병원을 자주가는데 부담을 느끼게 된다. 세번째는 이번 의료대란 이후 어느정도 정책적으로 보완되는 중이다. 대형병원의 진료비를 올리거나 꼭 필요한 환자만 받도록 하는 것이다. 네번째는 공공의료원으로 해결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구가 적은 시골에 병원을 설립하라는 것은 울릉도에 신세계 백화점이 있어야한다는 주장과 별로 다르지 않다. 둘 다 가능하지만 넌센스다. 우리나라에 의사가 부족하다는 것은 착시현상이다.
제일 큰 문제는 필수의료가 죽어가고 있다는데 있다. 필수의료를 필요한 만큼 유지한다면 의사수 부족 현상의 하나인 응급실 뺑뺑이도 사라실 수 있다. 같은 성적으로 의대에 진학했지만 정작 의사면허를 받고 난 후 어떤 과를 전공할지는 단순한 자질과 선호의 문제는 아니다. 의사도 인간으로서의 안정된 생활과 워라벨을 무시할 수 없다. 필수과를 전공하면 일단 위험한 진료를 해야하고 형사고소를 당할 가능성이 늘 존재하면서 의료사고로 인한 민사소송으로 파산도 감수해야한다. 각 과에 필요한 만큼의 전공의가 수련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반드시 필요하다. 만일 전공의 불균형 문제가 지속되면 점점 필수의료를 전공자는 줄어들고 수술을 받으러 외국으로 나가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젊은 시절 1년 6개월이라는 아까운 긴 암흑기를 지내고 전공의가 돌아온다. 한국 의료정책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완벽한 인프라를 구축했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대한민국의 의료를 책임지는 그들에게 사명감과 함께 올바른 의료정책에 대한 기대가 남아있어서이다.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의사는 정부에게도 환자에게도 갑이 아니라 을이다. 을로서 그들이 바라는 것은 건강한 사회의 유지와 합리적인 의료미래일 것이다. 이제는 80시간 연속근무도 합법이라는 전공의 법과 하라면 하고 주는대로 받는 전공의에 대한 교수와 병원의 시선이 바뀌어야 한다. 우리 의료를 살리는 필수의료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고소득자라는 의사에 대한 사회의 적대시도 사라져야 한다. 젊은 의료인들에게 사명감을 갖고 연구하고 진료할 수 있는 환경과 정책이 반드시 필요하다. 돌아온 전공의들이 다시 나가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