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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 특검 조은석·김건희 특검 민중기·채상병 특검 이명현 (사진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은 12일 내란 특검으로 조은석 전 감사원장 권한대행을(왼쪽부터), 김건희 특검으로 민중기 전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을, 채상병 특검으로 이명현 전 국방부 검찰단 고등검찰부장을 지명했다고 더불어민주당이 13일 발표했다. 2025.6.13

조은석(曺銀石) 특별검사는 대한민국의 법조인으로서, 검찰 내에서 손꼽히는 수사 실력과 강단, 그리고 탁월한 기획력을 겸비한 '특수통'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2025년 6월, 그는 이재명 대통령에 의해 윤석열 전 대통령 등의 내란 및 외환 행위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로 지명되면서, 그의 파란만장한 법조인생은 다시 한번 대한민국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출생과 학창 시절: 엘리트의 시작

조은석 특검은 1965년 5월 21일 전라남도 장성군 북상면 동현리(현 북하면 동현리) 가평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광주 광덕고등학교 1회 졸업생으로, 광주 지역에서는 비교적 신생 학교였던 광덕고를 졸업한 뒤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84학번)에 진학했습니다. 그는 학창 시절부터 매우 학업에 정진하여, 1987년 대학교 재학 중에 제29회 사법시험에 합격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이후 사법연수원 19기로 수료하며 법조인의 길을 걷게 됩니다. 사법연수원 19기 동기 중에는 훗날 민정수석을 지낸 우병우 전 수석과 윤석열 전 대통령의 변호인인 윤갑근 변호사 등이 있어, 일찍부터 법조계의 '에이스'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습니다. 군법무관으로 육군에서 복무한 뒤 1993년 검사로 임관했습니다.

검사 생활: 날카로운 칼날, 특수수사의 달인

조은석 특검은 1993년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에서 초임 검사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초임 검사 시절부터 정확한 상황 판단과 높은 추진력으로 특수수사 전문 검사로 인정받았습니다.

그의 검사 시절은 굵직굵직한 사건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경성 비리 사건 재수사 (1997년): 서울지검 특수1부 검사 시절, 국민의 정부 집권 여당이던 새정치국민회의의 정대철 대표, 이기택 전 대표 등을 구속 기소하며 이름을 알렸습니다.

•신동아그룹 최순영 회장 비리 수사 (1999년): 신동아그룹 최순영 회장의 횡령 및 외화 미반출 혐의를 수사하여 구속 기소했으며, 최 회장의 입을 열어 이수휴 은행감독원장, 이정보 전 보험감독원장, 홍두표 한국관광공사 사장 등을 모두 사법처리했습니다. 특히, 최 회장의 아내인 이형자 씨가 직접 조은석 검사를 불러달라고 요청할 정도로 수사력이 뛰어났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조폐공사 파업 유도 사건 수사 (1999년): 이 사건 수사에 참여하여 한동훈 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장인인 진형구를 직접 소환 조사하고 구속 기소했습니다. 또한, 사상 최초로 대검찰청 공안부를 압수수색하여 법조계에 큰 충격을 주기도 했습니다.

•참여정부 시절 공적자금 비리 수사 (2003년): 대검찰청 공적자금비리합동단속반으로 파견되어 김홍일, 한광옥 등을 구속 기소하고, 참여정부의 최측근 인사인 안희정 의원까지 구속 기소하며 성역 없는 수사를 이어갔습니다.

•CJ 해외 비자금 사건 수사 (2008년):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장 시절, 조폭에게 살인을 청부한 CJ 전 임원을 구속 기소했고, 이후 5년간의 내사를 통해 CJ 해외 비자금 사건으로 수사를 확대하여 파손된 USB 메모리를 복원하는 등 집요한 수사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청목회 사건 지휘 (2010년): 서울북부지검 차장검사 재직 시, 전국청원경찰친목협의회(청목회)의 청부입법 의혹 사건을 지휘하여 여야 정치인 다수를 기소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그는 정치권의 큰 미움을 사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조은석 특검은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장이나 대검 중수부 과장 등 소위 '특수수사의 핵심 요직'을 거치지는 못했지만, 대검 범죄정보1ㆍ2담당관, 대검 대변인 등 검찰총장의 핵심 참모 자리를 역임하며 엘리트 검사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했습니다. 그의 수사 스타일은 "매우 찰지게 수사를 잘한다"고 평가받았으며,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악독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는 그가 얼마나 저돌적이면서도 빈틈없는 수사력을 가졌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세월호 수사와 좌천: '강단'의 시험대

조은석 특검의 검사 인생에서 가장 큰 전환점 중 하나는 2014년 세월호 참사 수사였습니다. 당시 그는 대검찰청 형사부장으로서 해양경찰청의 부실 구조에 대해 강력한 수사를 지휘했습니다. 해경 123정장에 대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적용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법무부와 이견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강단 있는 수사 방식은 당시 박근혜 정부의 기조와는 달랐고, 청와대에 '미운 털'이 박히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당시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은 세월호 수사를 담당하던 광주지검에 직접 전화를 걸 정도로 민감하게 주시했다고 전해집니다. 결국 그는 수사 부서에서 배제되어 청주지방검찰청 검사장으로 10개월을 보낸 뒤, 2015년 12월에는 퇴직을 앞둔 검사들이 가는 자리로 여겨지던 사법연수원 부원장으로 밀려났습니다. 당시 법조계에서는 그가 곧 검찰을 떠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했지만, 그는 이 자리에서 1년 반 넘게 '꿍하고 버텨' 한동훈 검사장과 비슷한 뚝심을 보여주었습니다.

문재인 정부 하의 '부활'과 윤석열과의 경쟁

조은석 특검의 운명은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다시금 급변했습니다. 2017년 7월, 그는 검찰 내 서열 2위로 평가받는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으로 임명되며 화려하게 '금의환향'했습니다. 당시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좌천되었다가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복귀한 윤석열 전 대통령이 그의 직속 부하가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인연은 계속해서 얽히게 됩니다. 2018년 법무연수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던 그는 2019년 7월, 사법연수원 4기수 후배인 윤석열 당시 중앙지검장이 검찰총장으로 임명되자, 기수 문화에 따라 사임하고 변호사로 개업했습니다. 이는 두 사람이 한때 검찰총장 자리를 놓고 경쟁했던 라이벌 관계였음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감사원 감사위원: 또 다른 '강단'의 증명

검사 생활을 마친 조은석 특검은 2021년 1월 감사원 감사위원으로 임명되면서 공직에 복귀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그의 임명이 당시 최재형 감사원장이 청와대의 추천을 거부하고 지명한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감사위원으로서 그는 다시 한번 권력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강단을 드러냈습니다.

특히 2023년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 감사 사건에서 주심 감사위원으로서 140쪽에 달하는 검토 보고서를 작성하여 감사원 사무처의 감사 결과를 정면으로 비판했습니다. 그는 감사원의 감사가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에 해당할 수 있고, 보도자료가 허위 공문서 작성 및 동행사죄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감사원의 감사 과정에 대한 의결이 없었음을 지적했습니다. 이는 윤석열 정부의 감사 기조에 정면으로 맞서는 행동으로 해석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2024년 12월, 최재해 감사원장이 탄핵 소추로 직무 정지되자 감사원장 권한대행을 맡게 됩니다. 권한대행 기간 동안 그는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경호처장의 '한남동 관저 공사비 대납' 관련 뇌물수수 혐의에 대한 수사 참고자료를 대검찰청에 송부하고, 윤석열 정부의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 및 '천공' 관저 개입 의혹에 대한 감사 재심 검토를 요청하는 등 현직 대통령과 관련된 민감한 사안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4년간의 감사위원 임기를 마치고 2025년 1월 퇴임했습니다.

'내란 특검'으로의 귀환: 역사의 사초를 쓰다

조은석 특검의 이름은 2025년 6월, 윤석열 전 대통령 등에 의한 내란 및 외환 행위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법안에 따라 더불어민주당 추천 후보로 지명되며 다시 한번 전면에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같은 달 13일, 이재명 대통령에 의해 내란 특별검사로 최종 임명되었습니다.

그가 특검으로 선택된 배경에는 그의 압도적인 수사 실력과 고검장 출신으로서의 강력한 조직 장악력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내란 특검팀은 **역대 특검 중 최대 규모인 267명(특검 1명, 특검보 6명, 파견 검사 60명, 파견 공무원 100명, 특별수사관 100명)**으로 꾸려지며, 수사 대상 역시 기존 내란죄 외에 외환죄 관련 범죄까지 포함하고 있어 대규모 수사를 지휘할 적임자로 평가된 것입니다.

조은석 특검은 임명 후 "사초(史草)를 쓰는 자세로 세심하게 살펴가며 오로지 수사 논리에 따라 특별검사의 직을 수행하겠다"고 천명했습니다. '사초'는 역사를 기록하는 태도를 의미하며, 이는 그가 이번 수사를 개인적인 감정이나 정치적 고려 없이 역사의 한 페이지를 기록한다는 엄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임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그는 이미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와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을 방문하며 수사 개시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군사 기밀 등 보안 문제를 고려하여 정부 과천청사 등 대규모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을 특검 사무실로 물색하고 있습니다.

조은석 vs 윤석열: 기세 대결의 서막

내란 특검은 조은석 특검과 피의자 신분인 윤석열 전 대통령, 양측 모두 검찰 내 '특수통' 출신이라는 점에서 치열한 수싸움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입니다. 윤 전 대통령의 변호인단 역시 김홍일, 윤갑근 변호사 등 특수수사를 이끌었던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어 강대 강 대치가 예상됩니다.

실제로 윤 전 대통령의 첫 출석에서부터 양측은 **강하게 충돌하며 '기싸움'**을 벌였습니다. 윤 전 대통령 측은 지하 출석을 고수했으나, 조은석 특검 측은 결국 공개적인 지상 출석을 관철시켰습니다. 특검팀이 체포영장을 청구하는 등 강경하게 맞선 결과, 윤 전 대통령 측은 "스스로 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비록 영장이 기각되었지만 특검의 목적, 즉 피의자의 자발적 출석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한때 조은석 특검과 함께 근무했던 인물은 "조은석 특검이 원래 이런 식으로 수사를 잘한다. 당하는 입장에서 보면 '야 씨 이렇게까지 하냐' 악독하다는 말이 나오게 아주 찰지게 수사를 잘한다"고 평가하며, 이번 수사 역시 **'사건을 계속 키워나갈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조은석 특검의 이번 임명은 단순히 한 법조인의 새로운 직무를 넘어, 그의 수사력, 기획력, 그리고 어떤 압력에도 굴하지 않는 강단이 대한민국의 중요한 역사적 순간에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에 대한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그의 말처럼 '사초를 쓰는 자세'로 임하는 그의 수사가 앞으로 대한민국의 사법 역사에 어떤 기록을 남길지 귀추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