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특별자치시청
바다에서 뱃사람들이 항해를 하면서 가장 두려운 것이 삼각파도를 만나는 것이라고 합니다.
삼각파도는 방향이 다른 두 개의 파도가 동시에 일면서 부딪치는 파도인데, 파도끼리 부딪치다보니 파도의 높이가 피라미드처럼 높아져 영어로는 ‘피라미드 파도(pyramidal wave)’라고
합니다.
파도가 높고 방향이 서로 다르다 보니, 배는 파도를 넘지 못해 결국 파도 속에서 침몰하고 만다는 위험이 있어 뱃사람이 무서워하는 것입니다.
생각만 해도 두려운 일입니다.
폭우는 쏟아지고, 바람이 불어 파도는 거센데 방향이 각기 다른 파도가 산처럼 배를 에워싼다면 어느 배인들 그 속에서 무사할 수 있을까요?
저는 지금 우리나라가 마치 삼각파도에 휩싸인 것 같은 위기 속에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6.3 대통령 선거 후보들에게 보낸 제안서 속에서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엊그제 연합뉴스TV의 뉴스초대석에 초대받아 간 자리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대선 후보도 이러한 위기에 대해 말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저출산 문제, 지역소멸 문제, 정치양극화 문제입니다.
마치 삼각파도처럼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데 아무도 그 해결책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말하지 않는 것은 문제를 몰라서가 아닐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삼각파도는 사실 오래전부터 진전되어 왔던 문제입니다. 그러나 이제서야 피부로 실감이 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불과 10~20년 전만 해도 이렇게 심각한 문제가 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들입니다.
기차는 멀리서부터 기적소리가 들리고 나서 들이닥칩니다. 우리는 소리가 들렸어도 멍하고 있다가 갑자기 들이닥치는 기차에 부딪치는 것만 같습니다.
하긴 아직도 그 소리조차 무시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습니다.
0.72라는 현재의 출생율로 앞으로 2060년이 되면,
인구의 30%가 줄고, 노동력이 없어 일자리가 없어지고, 세금도 줄어 연금기금이 고갈되어
아이를 낳지 않은 사람들은 노인이 되어 30여 년의 노후를 가족도 없이 스스로 일해야만 해결되는 시대가 온다는 것을,
우리보다 해외에서 더 걱정하며 경고하고 있음에도 우리는 덤덤하기만 합니다.
2060년에 65세가 되는 노인들은 지금 30세의 청년들입니다.
(100명의 인구가 있을 때, 아이를 낳는 것은 여성이기 때문에 50명의 여성이 0.72명의 아이를
낳는다면 다음 세대의 인구는 35명으로 줄게 됩니다.)
지역소멸 문제도 심각하기만 합니다.
수도권으로의 인구 집중은 해마다 심화되고 있습니다. 2019년 우리나라 인구의 50% 이상이 수도권으로 이동한 이래, 수도권 인구는 계속해서 늘고 있습니다.
지역이 텅텅 비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세종시의 연동초등학교는 올해 3명의 입학생뿐이었습니다.
2학년이 2명, 3학년이 4명이고 전교생이 31명이라니 과거에 1,500명의 학생들이 다니던 연동초등학교가 언제 없어질지 풍전등화의 상황 같기만 합니다.
연동초등학교 선생님이 현재 16명이라고 하니, 이 분들의 직장도 언제 어떻게 될는지요.
세종은 나은 편인지 모릅니다.
전국적으로 올해 신입생이 없어 입학식을 못한 초등학교가 184개교이고, 이는 작년보다 27개가 늘어난 숫자라 하니 해마다 지역소멸 현상이 심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나라의 미래가 궁금하다면 고3 교실에 가 보라’는 말도 무색하기만 합니다.
텅빈 교실의 미래...
정치 양극화 문제도 망국적일 정도입니다.
혈압이 올라 피할 뿐이지만, 어떠한 연유로 생긴 것인지 정치적 진영논리와 양극화 문제는 다양한 의견이라는 차원을 넘어 서로를 적대시하고 동창 간에도 심지어 가족 간에도, 서로 말도 나누지 않는 사이로 벌어진 지 벌써 몇 년째입니다.
같은 국민 간에 이렇게까지 정치적 견해에 따른 적대감과 이질감이 커질 수 있는 것인지,
그 골의 깊이와 넓이는 세월이 갈수록 깊고 멀어지기만 해서 청년들 사이에서는 아예 정치 이야기나 진지한 토론은 금기시되어 있는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습니다.
그러나 피한다고 없어지는 문제가 아닙니다.
정치란 흡사 물고기가 헤엄치고 있는 어항 속의 물과 같아서 물이 오염되면 물고기마저 죽는 것임을 어찌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중국의 요순시절에 ‘백성은 정치가 무엇인지 모를 때 가장 잘하는 정치’라 했습니다만, 그것
은 농경시대의 이야기로,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힌 산업사회에서는 어떤 정책을 정부가 채택
하느냐가 국민의 삶과 미래를 좌우합니다.
한정된 농업생산물을 누가 갖느냐 즉, 어떻게 배분하느냐가 농경사회의 정치라면, 생산물 자체
를 얼마나 확대하느냐가 산업사회의 정치입니다.)
그 중 지역소멸 문제는 저의 비상한 관심사항입니다.
우리 세종시의 당면 과제이기도 합니다.
세종특별자치시는 수도권 집중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지역소멸 문제, 즉 비수도권의 균형발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건설된 도시이기 때문입니다.
수도권의 집중 문제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닙니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 때 소위 ‘백지계획’이라는 이름으로 지금의 세종시 부근에 ‘임시행정수도를’ 건설하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박 대통령의 사망 후 백지화되어 버렸지만, 이미 46년 전의 일이었습니다.
(‘백지계획’은 백지화된 계획이라는 뜻이 아니고, 당시 박 대통령이 아무런 선입견 없이 국내
최고 최신의 도시계획을 백지(白紙) 위에다 그려보라는 의미였습니다.)
그리고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이 ‘신행정수도’라는 이름으로 지금의 세종시 건설계획을 발표하였지만,
수도를 이전하기 위해서는 헌법 개정이나 국민투표가 필요하다는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수도’라는 이름조차 사용하지 못한 채 ‘행정중심 복합도시’라는 이름으로 건설되기 시작한 것이 ‘세종특별자치시’인 것입니다.
6.3 대선의 최대 화두가 ‘세종시의 행정수도 완성’이 되었습니다.
충청권 민심을 노려서였을까요?
모든 대선 후보들이 같은 목소리로 국회와 대통령실을 세종시로 옮겨 행정수도 완성을 약속하고 있지만, 약속대로 이행될지 어떤 연유로 또 무산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같은 목소리로 늘 주장해 왔습니다.
행정수도 완성은 세종시나 충청권의 지역 이슈가 아니고, 국가의 미래를 좌우하는 지역소멸 문제의 해결이라는 관점에서 보아야 할 ‘국가 아젠다’라고 말입니다.
박 대통령으로부터 46년이 흐르고,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22년이 흘렀습니다.
그 사이 서울 인구는 1979년 800만 명에서 지금은 수도권 인구가 2,60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국토의 11%에 불과한 지역에 인구의 51%가 산다는 것은 전 세계에 유례가 없는 현상입니다.
수도권에 인구가 밀집되는 이유는 뻔합니다.
좋은 일자리와 좋은 학교들이 밀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젊은 청년들이 몰릴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수도권 이동인구의 95%가 20대 젊은 층이고,
100대 대기업 본사의 91%가 서울에 집중되어 있으니 어쩌겠습니까?
그러니 지방의 젊은이들은 결혼을 할 수 없고, 아이 낳기를 두려워하며 지방을 떠나 서울로 향하고 있습니다.
서울의 출산율이 0.55로 전국에서 가장 낮은 수치임에도 불구하고, 서울과 수도권으로 인구가 몰리고 있는 것은 악순환에 악순환이 되풀이될 것을 예감케 합니다.
국회의원 300명 중 168명의 수도권 정치인들과 법조인들이 서울에서 헌법 규정과 법을 따지다가 2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러다가 나라가 삼각파도에 휩싸이고 있고, 삼각파도의 파고는 높아만 가고 있습니다.
우리 젊은이들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될까요?
조선 왕조 600년의 수도 한양이었던 서울을 지방으로 옮기려면 헌법을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라는 도식적인 사고방식을 고려시대의 왕조로부터 배울 수는 없을까요?
고려시대에는 3경 제도라 하여 서울을 세 곳에 두었습니다.
개경(개성), 서경(평양), 동경(경주)이었습니다. 서울을 남경이라 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전 세계는 AI 시대를 맞이하여 수도를 천도하는 경향이 점점 강해지고 있습니다.
구시대의 도시 인프라로서는 AI 시대에 부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네옴시티 건설계획이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도네시아는 자카르타에서 칼리만탄으로 신행정수도를 건설하고 있고, 카자흐스탄도 알마티에서 아스타나로 수도를 이전했습니다.
말레이시아는 쿠알라룸푸르에서 푸트라자야로, 호주는 멜버른에서 캔버라로, 브라질은 상파울로에서 브라질리아로 일찌감치 수도를 옯겼습니다.
독일은 베를린과 본을, 네덜란드는 암스테르담과 헤이그를 두 개의 수도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헌법상 규정되어 있지도 않은 수도 서울을, 관습헌법상의 수도이기 때문에 명문 헌법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도식으로, 언제까지 청년들과 우리나라 미래의 삶을 지연시켜야 할 것인지요.
법 규정에 삶을 목매고 사는 것과, 삶을 위해 법을 바꾸어야 하는 것 중 어느 것이 우선이어야 하는지요.
좋은 일자리와 좋은 학교들을 속히 지방으로 분산시켜야 합니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정부기관, 특히 대통령실, 국회, 정부기관들을 우선적으로 지방으로 이전하고, 이어서 서울대학교를 비롯한 좋은 교육기관을 이전하거나 육성해야 합니다.
대기업들은 좋은 인재와 인력을 구하기 위해 해외를 전전하며 이사를 하고 있습니다.
수도권이 아니면 해외로 기업을 옮겨야 할 정도로 우리의 지방은 경쟁력이 없는 것입니다.
비수도권 지역에서 세계 최고의 인재를 양성하고 보급하는 ‘메가 싱크탱크’를 만들어 미래의 인재를 공급할 수 있을 때 글로벌 대기업들이 유치될 것입니다.
대덕 연구단지와 세계적인 대학 카이스트 그리고 중이온 과학 비즈니스벨트, 바이오 연구단지, 16개의 국책연구기관들이 명문 대학들과 협력하여,
국가의 중심지역에 미래의 ‘사이언스 밸리’를 조성함으로써 인재를 전국적으로, 세계적으로 공급한다는 것이 메가 싱크탱크의 구상입니다.
‘정치꾼은 다음 선거를 생각하고, 정치인은 다음 시대를 생각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과연 우리의 대선 후보들은 ‘행정수도 완성’이 단순히 선거용 지역공약이 아닌 국가 백년대계의 비전이어야 한다는 것에 공감을 넘어 절감하고 있을까요?
행정수도를 완성시키지 않고 지금의 지역소멸 문제를 해결할 묘안을 가지고 있을까요?
선거가 끝나면 또 어떤 핑계를 대고 무한정 지연시키지는 않을까요?
양치기 소년의 불행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 세종특별자치시장 최민호 -
* 내일은 6월3일 대통령 선거일입니다.
직원 여러분!
보다 정의롭고, 보다 정직하고, 보다 도덕적인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영광된 다음 시대를
위해 꼭 투표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