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특별자치시장 최민호


‘영혼(soul)’.
영혼이란 무엇일까요?

‘영혼 없는 공무원(관료)’이란 말을 처음 쓴 사람은 독일의 법률가이자 사회학자인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입니다.
그는 1919년 독일이 1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직후, 독재 또는 전통적인 권위와 비합리적인 카리스마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관료제’의 우수성을 강조하기 위해 이 말을 사용했습니다.

베버에 따르면 ‘관료제’는 합리적인 원칙에 따라 체계화된 조직입니다.
위계질서 속에 단지 법규에 따라 행동하며, 자의적인 판단을 배제한 채 업무와 권한이 엄격하게 정형화되어 움직이는 조직이라는 것입니다.
또 그렇게 움직이는 사람을 ‘관료(직업공무원:technocrat)’라 정의하였습니다.

요컨대 그는 매우 좋은 의미에서 관료를 말하였고, 관료제는 합리적이고 기술적이며 전문성이 있는 조직으로, 당시의 군주에 의한 불합리하고 자의적인 리더십을 배척하고 근대적인 법과 정치 산업 등의 분야에서 관료제를 도입하여 조직의 합리성과 예측가능성을 높여야 함을 강조하였던 것입니다.

베버는 “관료제는 그 어떤 다른 지배구조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전문 지식을 수단으로 삼아 업무를 매우 효율적으로 훨씬 더 잘 수행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베버는 ‘관료’ 즉, ‘직업공무원’은 철학적이거나 이념의 중심에 있는 가치를 함부로 예단하지 말 것과 임의로 가치판단을 하지 말 것을 강조했습니다.
또한 “관료제는 감정이 아니라 전문성과 능률을 기반으로 운영되어야 한다”며 ‘영혼 없는 관료’를 요구했습니다.
‘영혼’이란, 나름대로의 ‘자의적인 가치판단’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도 이 범주에 들어갈 것입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영혼 없는 공무원’이 도마에 오릅니다.
오로지 출세를 위해 이념과 철학이 다른 정권에 기술적으로, 전문적으로 비위를 맞추며 카멜레온처럼 급변하는 공무원의 기회주의적인 모습을 비아냥거리는 말입니다.

베버가 칭찬해 마지않고, 또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영혼 없는 관료’라는 좋은 의미는 어디로 다 가버리고, ‘영혼 없는 공무원’은 직업 공무원으로서 이처럼 모욕적이고 자존심 상하는 말을 들어가며 공무원을 해야 하나라는 회의마저 들게 하는 말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명박 정부로 정권이 바뀌면서 초대 행안부 인사실장을 했던 저는 공무원들이 ‘영혼 없는 공무원’이라는 지탄을 듣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공무원에도 분류가 있다.
‘영혼’을 말한다면 ‘정무직’과 ‘일반직’으로 나누어 생각해야 한다.

예컨대 새로 바뀐 상관이 칼을 만들어 오라고 지시했을 때, 우리는 무엇에 쓸 것인가에 관한 용도를 반드시 물어야 한다.
상관이 과일 깎기 위한 칼이라 한다면 과도를 만들어 드려야 한다. 그런데 과일을 말하면서 고기를 써는 칼로 바꾸어 만들어 오라고 한다면 우리는 그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말하여야 한다. 그것은 직업 공무원의 책무다.
그러나 상관이 ‘그것은 내가 결정할 테니 당신은 시키는 대로 해’ 라고 다시 지시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공무원의 생명을 걸고 반대를 해야 할까, 아니면 그 지시에 따라야 할까?
지시에 따랐다가 나중에 칼이 잘못 쓰여졌다 하여 책임문제가 불거졌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러한 딜레마에 나는 막스 베버를 떠올렸다.
이념이나 철학의 영역에 가치 판단하는 것은 정무직의 몫이다.
그것은 ‘왜?’라는 철학의 영역이다.
일반 직업공무원은 ‘어떻게?’라는 기술적이고 산술적인 가치판단을 하는 것이다.
일반 공무원은 바로 정책의 철학이나 이념에 관여하지 않는 ‘영혼 없는 관료’가 되어야 한다고 베버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정무직 공무원은 지시가 옳든 그르든, 실패에 따른 온전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일반 직업공무원은 지시에 따르되, 기술적인 부분에 한해 책임을 지는 것이 ‘직업공무원’ 즉, ‘관료제’의 원칙에 입각하는 것이다.”

무엇이 잘못되면 실무자부터 책임이 거론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는 것이 제 생각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그렇지만은 않았습니다.
어찌할 수 없는 힘없는 실무자가 책임을 지고, 오히려 영혼이 뚜렷해야 할 정무직들이 실무자에게 실패의 책임을 떠넘기는 현상을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예전에는 공무원의 신분보장이 제법 강하게 이루어졌었습니다.
정권이나 인사권자가 바뀌어도 법령에 위반되지 않는 한, 신분이 보장되므로 원칙과 법칙이라는 공무원의 소신과 질서유지라는 베버의 좋은 의미의 ‘관료제’가 지켜졌습니다.
그것은 곧 국민에 대한 신뢰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으로 공무원의 높은 신뢰를 받는 사법부의 판사나 검사는 더욱 그러했습니다.
'정치와 감정이 없는 오로지 법과 원칙', 그것이 그들의 영혼이었고, 정권이 바뀌어도 그들의 영혼은 변함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덧 원칙과 규범에 뻣뻣하다 보니 융통성 없고 오만한 부정적 의미의 ‘관료제’로 서서히 변질되기 시작했습니다.
결정적으로 IMF가 터지면서 신분보장이 “철밥통”이라는 악명으로 이어지고, 이로 인해 정년보장이 위태로워진 공무원들이 살아남기 위해 ‘영혼이 충만된 공무원’으로 변신하여 정치적인 눈치와 연줄을 살피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곧 ‘영혼 없는 공무원’으로 지탄받게 된 것입니다.
‘정무감각’ 없는 공무원은 마치 빈껍데기나 된 듯한 분위기가 감돌기 시작했습니다.

‘좋은 의미’의 영혼 없는 공무원이 ‘나쁜 의미’의 영혼 없는 공무원이 된 연유가 이렇게 이루어진 것이기는 합니다만, 과거에는 소신 발언도 제법 했던 직업 공무원들이 이제는 입이 있어도 말은 할 수 없는, ‘영혼 없는 공무원’이 되어 하루하루 지내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프기도 합니다.

장관 앞에서도, 대통령 앞에서도 직을 걸고 소신껏 ‘입바른 소리’를 했노라고 큰소리를 치는 과거 선배들의 말씀은 이제 ‘전설’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면서 대통령의 한 말씀에 영혼을 잃어버린, 아니 있어야 할 영혼이 아예 존재조차하지 않았던 정치인들이나 언론들이 직업 공무원들을 ‘영혼 없는 공무원’이라고 비난하는 것을 보면 어안이 벙벙해집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7조는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
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 세종특별자치시장 최민호 -